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전쟁터, 우리의 장
당신의 장 속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약 2만 종의 세균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거주자가 아니다. 비타민을 합성하고, 면역세포를 조절하며, 심지어 세로토닌의 90%를 생산한다. 우울증 환자가 동시에 장 질환을 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초가공식품이 이 정교한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아는가. 문제는 단순히 나쁜 균을 죽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연쇄 붕괴가 일어난다.
다양성의 죽음
캐나다 앨버타대학교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다양성은 자연식품을 먹는 사람들보다 평균 40% 낮았다. 다양성이 낮다는 것은 생태계가 취약해졌다는 의미다.
한두 종류의 나무만 있는 숲은 병충해에 쉽게 무너진다. 장도 마찬가지다. 식품첨가물은 유익균인 락토바실러스, 비피도박테리움을 선택적으로 공격한다. 반면 클로스트리디움, 대장균 같은 기회감염균은 화학물질에 강한 저항력을 가졌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은 인공 감미료를 8주간 섭취한 쥐의 장내에서 유익균이 25~45% 감소한 반면, 유해균은 15~30%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균형이 깨진 후 유해균이 주도권을 잡으면 암모니아, 황화수소 같은 독소를 만들어낸다. 이 독소들이 장벽을 자극하고 염증을 일으킨다.

무너지는 장벽
장벽은 1층짜리 세포막이다. 이 얇은 막이 우리를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하는 최전선이다. 세포들은 밀착연접이라는 단백질 구조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빵의 수분 증발 방지제, 아이스크림 안정제로 쓰이는 증점제 카복시메틸셀룰로오스를 14일간 투여한 쥐의 장벽 세포 사이 간격이 2~3배 넓어졌다는 코넬대학교 2016년 연구가 있다. 세포 사이 틈이 벌어지면서 미소화된 음식 입자, 세균 내독소, 유해균이 혈액으로 유입된다.
이것이 장누수 증후군이다. 면역계가 이를 적으로 인식하면서 전신에 염증이 일어나고, 반복되면 자가면역질환으로 발전한다.

아일랜드 코크대학교의 2018년 연구는 충격적이다. 장내 미생물이 없는 무균 쥐는 정상 쥐에 비해 불안 수준이 3배 높고, 우울 행동을 2배 더 많이 보였다. 장내 미생물을 정상화시키자 행동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세로토닌의 90%, 도파민의 50%가 장에서 만들어진다. 식품첨가물로 장내 미생물이 파괴되면 세로토닌 생산이 감소한다.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의 60%가 동시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앓는 이유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는 이유
비만인 사람과 정상 체중인 사람의 장내 미생물 구성은 명확히 다르다. 워싱턴대학교 제프리 고든 교수의 2006년 연구에서 비만 쥐의 장내 미생물을 무균 쥐에 이식하자, 정상 먹이를 먹는데도 체지방이 47% 증가했다.
인공 감미료는 당을 대사하는 미생물을 교란시켜 오히려 포도당 불내성을 유발한다. 체중을 줄이려고 다이어트 음료를 마시는데, 역설적으로 당뇨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면역계의 훈련장이 무너진다
장은 인체 면역세포의 70%가 집중된 최대 면역기관이다. 장내 미생물은 면역세포를 훈련시킨다. 다양한 균과 접촉하면서 면역계는 무엇이 위협이고 무엇이 무해한지 학습한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 연구에서 낙농 농장에서 자란 어린이와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이를 비교했다. 농장에서 자란 아이들의 알레르기 발생률이 현저히 낮았다. 흙을 만지고 동물과 접촉하며 자연 속에서 뛰노는 과정에서 면역 훈련이 이루어진 것이다.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면 면역계가 실전 훈련 없이 성장한다. 위협이 없는 물질에도 과민 반응하거나, 정작 위험한 것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이것이 위생 가설이다.
회복은 가능하다, 하지만

다행히 장내 미생물은 회복 가능하다. 2020년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에서 발효식품 위주 식단으로 전환한 그룹은 10주 만에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평균 32% 증가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초가공식품을 먹으며 황폐화된 장은 회복 속도가 느리다. 일부 유익균 종은 완전히 사라져서 식이요법만으로는 복원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