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이 약을 먹나요?
중학생이 당뇨병 약을 먹고, 고등학생이 고혈압 약을 복용하며, 초등학생이 지방간 진단을 받는다. 2025년 한국의 현실이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2025년 8월 발표한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30세 미만 2형 당뇨병 유병률이 2008년 인구 10만 명당 73.3명에서 2021년 270.4명으로 13년 만에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청소년기(13~18세)에서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졌다.
한때 ‘성인병’이라 불렸던 질환들이 이제 청소년들에게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왜일까?

초가공식품 세대가 치르는 대가
1990년대생, 2000년대생, 2010년대생.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초가공식품에 노출된 첫 세대다.
과거 세대는 집에서 만든 밥을 먹고 자랐다. 간식은 과일이나 떡이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다르다. 아침은 편의점 삼각김밥, 점심은 급식을 대충 먹고, 방과 후에는 치킨과 피자를 배달시킨다. 간식으로는 과자, 라면, 탄산음료를 달고 산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하루 평균 초가공식품 섭취 비율이 전체 식사의 35%를 넘는다. 일부는 50%를 초과한다. 성인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문제는 성장기 청소년의 몸은 성인보다 훨씬 민감하다는 것이다. 뇌와 장기가 발달하는 시기에 초가공식품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세포 수준에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일어난다. 췌장의 베타세포가 조기에 소진되고, 인슐린 저항성이 고착화되며, 혈관벽에 플라크가 쌓이기 시작한다.

조기 만성질환은 조기 사망을 의미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릴 때 당뇨병을 앓으면 합병증이 훨씬 일찍 찾아온다는 것이다.
2024년 국제학술지 JAMA 네트워크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2형 당뇨병을 앓는 소아 환자 중 7%가 이미 당뇨병성 망막병증을 가지고 있다.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합병증이다. 보통 당뇨병을 10~15년 이상 앓은 후에 나타나는 증상인데, 소아 환자들은 진단 시점부터 이미 가지고 있다.
영국 의학저널은 더욱 암울한 미래를 예고한다. 40세 이전에 2형 당뇨병 진단을 받을 경우, 40세 이후에 진단받은 사람보다 사망률이 4배까지 높아진다는 것이다. 조기 발병은 곧 조기 사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지금의 청소년들이 부모 세대보다 건강수명이 짧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3.5세지만 건강수명은 66.3세에 불과하다. 인생의 마지막 17년은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산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의 청소년들은 이미 10대에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60대, 70대가 되었을 때 어떤 상태일지 상상해보라. 아니, 그 나이까지 살 수나 있을까?
미국 예일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의 2018년 연구는 경고한다. “현재의 소아 비만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0년생 아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평균 5년 일찍 사망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이다.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수명이 짧아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다. 미국보다 초가공식품 섭취 증가 속도가 빠르고,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이 더 심하기 때문이다.
가난이 질병을 만든다
질병관리청 연구에서 드러난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소득 격차가 건강 격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2형 당뇨병 발생 위험은 중·고소득층보다 3.7배 높았다. 14세 미만 아동에게서는 5.1배, 여아에서는 4.2배까지 벌어졌다.
왜일까?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낮을수록 아침 식사 결식률이 높아, 하위 20% 가구의 아침 결식률은 상위 20%의 두 배에 달했다. 아침을 거르면 점심·저녁 과식으로 이어져 체중 증가와 대사질환 위험이 커진다.
저소득층 가정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보다 저렴한 가공식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집에서 요리하기 어렵고, 운동할 환경도 부족하다. 빈곤이 질병을 키우고, 질병은 다시 빈곤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소아와 젊은 층의 당뇨병 유병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국가 차원의 관리가 시급하다”며 “특히 사회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건강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 만성질환 문제는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초등학교부터 건강 교육을 정규 과목으로 편성해야 한다. 학교 급식은 초가공식품 중심에서 신선한 재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튀김보다는 찜과 구이를, 가공육 대신 자연 식재료를 선택해야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초가공식품 광고를 규제해야 한다. 특히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정크푸드 광고는 아이들의 식습관을 망치는 주범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이미 청소년 시청 시간대의 정크푸드 광고를 금지했다.
저소득층 가정의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학교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과일 간식 프로그램, 지역 농산물 직거래 장터 지원, 건강 식품 바우처 제도가 필요하다.
체육 시간을 늘리고, 학교 주변에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운동은 단순히 칼로리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고 대사 기능을 개선하는 가장 강력한 치료제다.
편리함과 맛을 위해 초가공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다. 지금 식탁 위의 선택이 20년 후, 30년 후의 건강을 결정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